소설/완독

[싱숑]전지적 독자 시점/문피아

낑깡9 2021. 6. 17. 22:00

※스포일러 합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리뷰

탐라 추천작. 입소문 타고 흥했고, 워낙에 이벤트를 크게 하고 길게 했고, 웹툰까지 나왔다. 웹소설 읽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을 듯.

책빙의 찬가

요즘 책빙의물은 독자 빙의물이 대다수로, 전개를 알고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이벤트를 싹쓸이하는 사이다 전개가 주다. 그런데 초창기(2010년 전후)책빙의물은 작가 빙의물로, 장르 자체가 피폐물이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전개하고 싶다면 환생, 빙의물. 미래를 알고 싶다면 회귀물. 둘을 섞으면 책빙의물이 된다. 사이다와 사이다를 섞었는데 사약이 나오는 게 아주 재밌지:)

작가 빙의물
작가는 책 속에서만큼은 신이다. 전지전능한 타입 주인공 찾기도 쉽지 않은데 '책빙의'만 검색하면 창주주가 우르르 나오던 좋은 시절이 있었다. 그 때 환생/차원이동/악녀에 비해 대중적인 키워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읽을 게 없어서 써 보려고 한 적 있는데, 굉장히 기빨린다. 남들도 같은 심정이었겠지.

작가에게 책빙의는 하위 차원으로의 추락이다. 펜 끝으로 세계의 존속과 인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능을 잃고, 인물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한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메리트도 아니다. 오히려 추락한 신이 세계를 외면할 수 없게 하는 족쇄에 가깝다. (빙의자가 세계에 책임이 덜할수록 이야기가 가벼워진다. 작가 책빙의물이 설정 빙의물이 되다, 결국 독자 책빙의물이 되어서야 사이다 전개가 된다.)

전개
빙의자가 처음부터 자기가 신이라는 걸 알아차리지는 않는다. 환생이나 차원이동을 했다고 착각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본인이 창조주인 걸 자각하게 된다. 비극의 시작이다:)

빙의한 독자는 마음 편하게 악역을 미워할 수 있지만, 작가는 살인자에게도 죄책감 없이 화낼 수 없다. 전독시 초반에 독자가 지하철 조폭들을 악역으로 규정하고 폭행한다. 본인이 작가인 걸 그 때 알았어도 같은 사고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
작가인 걸 들키기라도 하면 전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김독자는 적대 세력 정리가 끝나고 알게 되어서 인생이 막장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인물이 '내 불행을 당신이 책임지라' 하면 무슨 명분으로 거절하겠어ㅎㅎ

'창조주인 나'를 자각한 신들은 주연을 사랑하고, 또 멸시한다. 태어난 이유, 성장 과정, 삶의 목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대가 사람으로 보일까? 내가 만든 하찮은 세계에서 내가 만든 적 없는 가능성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사랑하는 등장인물 곁으로 돌아오는 작가들. 자기합리화와 체념이 깔린 자기파괴적인 전개가 아주 맛있어요. 김독자는 유중혁을 제일 사랑하지만 유상아 없었으면 진즉 미쳤을 거라구요.

인물은 그렇다치고 세계관은 어쩔건데. 전쟁도 평화도 내 탓, 날씨도 내 탓, 계급차도, 오늘 먹은 음식도 내 탓. 나에게만큼은 행운도 불운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

결말
세계의 정체를 알게 된 창조주들은 선택해야 한다. 세상을 위해 내 일상을 버릴지, 세상을 버리고 일상을 찾을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내 일부를 포기하는 행위. 보통은 자기를 갈더라. 이 방면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례는 <메마른 바다>말곤 못 봤다. (책빙의는 아닌데 모양만 다르지 같은 맛이다) 작가니까 이야기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전독시 결말부에서 김독자가 '가장 오래된 꿈'이 된 건, 김독자가 본인이 작가라고 자각한 시점에서 예정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50%를 남겨 둔 건 욕심 많이 부린 거임.

IF
전독시는 현실과 책이 섞여버린 세계관이니까 독자의 선택지가 없다. 김독자가 만약에 책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갔다면? 연재란에 활자는 남아 있었을까? 있더라도 그건 이미 죽은 이야기겠지. 작가가 버린 이야기니까. 독자는 가진 줄도 몰랐던 걸 잃어버리고 일상을 살아가겠지. 이런 앗쉬발꿈 엔딩도 책빙의에서는 좋아. 아름답게 죽는 대신 추잡해도 현실을 살기로 한 거잖아. (메마른 바다가 감상에 큰 영향을 줌)

감상
작가 책빙의물은 창조주가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는 서사다. 온전한 타인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드코어고. 자살로 끝나지. 작가에 관계 없이 끝맛이 비슷비슷하다.(필명세탁일 수도 있겠지만)

전독시는 여러 신화를 차용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성좌 이명 재미나고. 열심히 사는 애들 좋고. 그 중에 작가 빙의물을 n년만에 찾은 기쁨이 크다. 난 원래 엔딩 보면 엔딩 맛이랑 소재밖에 기억 안 난다. 등장인물 이름이 이렇게 많이 기억나면 훌륭한 책이지.

여신의 자살
책빙의물 읽다 보면 이게 엄마의 마음일까 싶다. 내가 만들었다고 낮잡아보다가 내 예상을 벗어나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그제서야 사랑하고 헌신하는 게.
죽어서 피와 살과 뼈를 흩뿌린 모든 창조의 여신들이 이런 마음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피조물을 사랑하면 죽게 될 거에요. 모든 여신은 창조의 권능이 있는 한 언젠가 죽게 되어 있어요. 피조물을 사랑하지 않는 일을 얼마나 반복할 수 있겠어요. 최윤정 님 '마왕'에 권능을 포기한 여신이 나옵니다.

싱숑 부부작가라매요. 내가 전독시 이전에 읽은 모든 창조주 자살서사는 여작가 작품이었음. 아내분 아이디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당수 여작가들이 주인공을 남신으로 설정하는데, 남작가들은 주인공을 신으로 만들지 않는다구요. 여작가 소설에 신이 등장하면 '나'고, 남작가 소설에 신이 등장하면 '남'이에요. 너무 재밌지 않습니까. 조아라에서 작가빙의 핫할 때 문피아에 책빙의 검색하니까 안 나왔음. 여신서사를 써 달라!!

남작가가 쓴 자살서사를 보면 섬기는 사람을 위해 죽더라고요. 윗사람. 드래곤라자 감성. 기사들이 왕이나 레이디를 위해 죽듯이. 북유럽신화에서 프레이르가 누굴 위해 죽었습니까. 저는 이 타입 주인공을 '사제'라고 부릅니다. 자살하는 여신과 순교하는 남사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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