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닉]백작 따님의 고백/티라미수
※스포일러 합니다.
연재 때는 '어느 백작영애의 고백'이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제목을 바꾼 건가.
지금 리뷰는 연재 때 읽었던 분량을 기준으로 한 것.
주인공 비타. 빨간 머리. 향수 사업을 한다. 유모가 애를 바꿔치기해서 백작영애지만 유모 딸로 자랐다. 회귀 후 자기 자리를 찾아서 백작영애로 산다.
'태가 다르다'라든가 '분수를 지켜'라든가. 혈육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 혈통에 따라 사람의 급이 달라진다는 사상이 들어있는 것 같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혈통빨.
어쨌든 난 이 소설의 문장들을 좋아한다. 비타가 자기 백작부인을 만나서 한 자기소개가 인상깊었다.(부정확)
"거울 속이나 초상화 속에서 이 얼굴을 보지 않으셨나요?"
근본없는 평민을 감옥이 아니라 손님방에서 감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백작이 화를 낸다. 그리고 비타를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젊은 시절의 아내가 날 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미치게 사랑한다! 강조의 의미로 비속어 2개쯤 장식하고 싶을 만큼!!
잃어버린 딸 시점의 소설은 많잖아요. 알고보니 내가 ooo?! 당신이야 인생역전이지만 그 집안 사람들은 뭐 하러 당신을 받아주고 사랑합니까. 정략혼으로 팔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젊은 시절의 아내'이게 핵심이지. 사랑하던 사람에게 매일 설렜던 그 시절. 보상하지 못한 나의 어린시절. 이 뒤로 가족들이 얘한테 절절매는 게 저 문장 하나로 완벽하게 납득이 된다. 별로 인상깊은 문장 같지 않았다면 내 필력이 구려서 그래. 글 읽다 중간에 보면 설렌다고.
가족들은, 특히 부모는 비타한테 죄책감을 갖고 있다. 감정적으로 부모가 채무자.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비타가 부모에게 빌붙어 살고 있다. 이 뒤틀린 권력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 너무 좋아 ㅠ 같은 성을 쓰고 같은 지붕 아래 있는 것 만으로도 너도 나도 불편해하지만, 그렇다고 이 관계를 청산할 수도 없는 거지.
비타는 백작인 부모가 필요해서 같이 살고 있을 뿐 친밀감은 없다. 부모도 죄책감을 덜고 싶을 뿐. 비타가 향수 사업으로 그나마 지원받던 돈도 안 받으려고 할 때 '올 것이 왔구나'싶었다. 왜 드래곤이 남주인지 아십니까? 1. 얘가 비타한테 목숨빛을 졌기 때문에. 2. 비타의 인간 남자 전반에 대한 환멸 때문에.
너무 재밌다. 뒤는 완결까지 읽고 붙여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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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까지 달렸다!
3권까지만 사 보세요. 3권 말이 되면 너무 아쉬워서 4권을 사 읽고 싶겠죠. 아쉬운 대로 끝내길 추천.
비타가 알로이스를 떠나보내는 방식이 좋았다. 상대의 좋은 속성만 기억하고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잊겠다니, 비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끝을 맺은 것 같다. 본받을 만 하다.
1-3권: 비타의 인생 찾기
4권: 현실과 타협
3권과 4권 사이에 작가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혼하셨나? 시가로부터아들 낳으라는 압박이라도 받고 있나?
세오도르는 언제부터 못 생긴 설정이었나? '바다를 동경하는 은방울꽃'까지는 블랙조크인가 싶었는데, '독립이 무서우니 차악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거 읽고 너무 네이트판 보는 느낌이었다.
'처녀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너무 구리다. 한두 번이면 넘어가겠는데 반복도 너무 심해. 출판사에서 교정교열도 안 해 주는 걸까, 작가님이 고집한 걸까? 차라리 '계집애들'이 낫겠어. 여자를 계집이라고 하는 남자는 서열 ㅅㅌㅊ일 가능성이 있지만, 처녀&어린 여자 찾는 남자는 스스로 자기 능력에 자신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거잖아.